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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꽁이 합창단 (안훈)

2012.12.21 18:16 조회 수 6769

사람은 살면서 여러 차례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때로는 그 전환점이 좋은 쪽으로 작용하기도 하고 안 좋은 방향으로 이끌기도 하지요.

어느 쪽이든 전환점은 그 사람에게 대단히 강한 임팩트를 주게 마련입니다.

저에게 있어 몇 가지 전환점은 고등학교 때 현이와 둘이 떠난 필리핀 무전 여행, 대학생 때 아버지의 갑작스런 사망,  결혼, 사이판 이주, 아이들의 출생 등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런데 며칠 전에 오래 전 앨범을 들여다 면서 하나를 더 추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맹꽁이 합창단의 산행.

때는 1988년 8월이었습니다.

당시 본과 4학년이었던(제 기억이 맞다면) 합창단 단장님께서 남자 단원들을 광주로 소집하셨습니다.

소집 인원은 4명.

저는 중학교 2학년이었고 권영이가 6학년, 현이와 용국이가 3학년이었죠.

이 네 명을 이끌고 지리산에 가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지리산이 어떤 곳인지도 모르고 저희는 그저 좋아서 광주에 모였죠.

광주에 가서 가장 좋았던 건 삼촌에게 예쁜 여자 친구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미래의 조카들에게 너무나 잘 해 주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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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여전히 대학생 같은 우리 외숙모, 그 때는 정말 선녀 포스 작렬~~~

지리산으로 떠나기 전에 아파트 입구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정용국과 안현은 지들 옷가지 몇 개 넣은 얄팍한 배낭을, 오권영은 중간 배낭을 짊어졌습니다.

나머지 먹을 것과 모든 물품을 커다란 배낭 두 개에 나누어 넣었는데 그 중 하나가 제 차지가 되었습니다.

삼촌은 거기에다 사진에 보이는 파란색 텐트를 더 얹었죠.

무게가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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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타고 하동으로 가서 가장 먼저 간 곳이 쌍계사였습니다.

산행 시작 전이라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지 아무도 몰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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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계사에서 출발하여 산길로 한 두 시간 가서 도착한 곳이 불일폭포입니다.

길도 그다지 험하지 않았고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손으로 V를 그릴 정도로 여유가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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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일폭포에서 청학동으로 올라가는 길로 접어든 사람은 우리뿐이었습니다.

폭포 근처에 있던 어떤 아저씨가 삼촌께 물어보셨죠.

"어디 가요?"

"청학동 갑니다."

"아니 이 꼬마들 데리고요?"

아저씨는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셨습니다.

그리고 조금 뒤 우리는 그 웃음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오르막길...

어쩌면 그리도 오르막만 있는지.

가끔씩 내리막도 나와주는 센스가 지리산에는 전혀 없었습니다.

오권영 표정 완전 압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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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 처음 해 보는 산행에 무거운 배낭은 어깨를 짓누르고 다리는 천근만근.

얄팍한 배낭 매고 저 앞에 가는 현이와 용국이가 어찌나 부럽던지...

이런 데 데려온 삼촌도 야속하고 그냥 그 자리에 주저앉고 싶었습니다.

이 사진 찍을 때는 거의 제 정신이 아니었죠.

산행 초짜인 꼬마들을 데리고 지리산에 발을 들여놓은 삼촌도 상당히 갑갑했을 겁니다.

산 속의 어둠은 너무나 빨리 찾아왔고 결국 청학동을 한 고개 남겨놓고 텐트를 쳐야 했습니다.

텐트를 다 치고 삼촌 입에서 나온 한 마디...

"맥주 한 모금 마시면 죽일텐데..."

그 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그 심정 100% 이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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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 텐트를 걷고 청학동을 향해 떠났습니다.

목표가 눈 앞에 보이니 발걸음이 왜 그렇게 가볍던지...

마지막 고개에서 청학동 마을이 보였을 때 처음으로 ‘성취감’이라는 것을 맛보았습니다.

‘힘들긴 했지만 이 맛에 산에 오르는구나’ 라는 걸 처음 느꼈죠.

아마 삼촌은 우리들에게 그런 걸 느끼게 해 주고 싶으셨을 겁니다.

힘든 일을 이루어 낸 후에 짜릿하게 전해오는 뿌듯함 같은 것 말입니다.

그게 삼촌의 의도였다면 그 의도는 저 뿐만 아니라 다른 조카들에게도 성공적으로 전달되었음에 틀림없습니다.

쌍계사로 돌아오는 산행은 올 때보다 훨씬 쉬웠으니까요.

물론 몸은 더 피곤했지만 개선장군처럼 당당하고 씩씩하게 내려왔습니다.

지리산이 떠나가게 노래도 부르면서 말입니다.

광주로 오는 차 안에서 우리는 완전히 시체처럼 쓰러졌습니다.

지금껏 한 번도 해 보지 못한 극한 경험을 했으니 그럴 만도 했지요.

광주에 도착한 우리는 두 가지 쇼킹한 경험을 했습니다.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광주는 항상 데모가 끊이지 않았고 경찰은 그 때마다 최루탄을 쏘아댔습니다.

삼촌이 최루탄을 피한다고 데려간 곳이 그만 최고 격전지였습니다.

우리는 그날 몸 속의 모든 구멍에서 나오는 눈물과 콧물과 땀으로 범벅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고나서 찾아간 삼겹살 집.

그 때의 삼겹살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먹는 페이스에 삼촌이 상당히 기겁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결국 공기밥을 시켜서 밥을 볶아 먹는 것으로 삼촌의 지갑은 적자를 면할 수 있었습니다.

25년 전 일을 디테일하게 기억할 수 있는 건 그만큼 임팩트가 컸다는 반증이겠지요.

지리산 산행은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해 준 의미깊은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삼촌이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자랑스럽습니다.

이틀 전에 삼촌이 올리신 글 중에 조카들이 삼촌을 밟고 올라가게 등을 기꺼이 내 주겠다는 말이 있네요.

네, 지리산에서 너무나 커 보였던 삼촌의 그 등 기꺼이 밟고 올라가겠습니다.

그리고 제 등도 용민이 용진이에게 내 주겠습니다.

그러면 그 녀석들이 또 조카들에게 밟고 올라갈 등을 내 주겠지요.

힘든 일 있으시면 지리산 청학동 사진 보시기 바랍니다.

언제 어디서나 맹꽁이 합창단 단장님을 응원하는 맹꽁이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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