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영향력

선향 이야기

   >   선한소식   >   선향 이야기

세상에서 가장 넓은 등짝

2012.12.16 16:55 조회 수 7458

  ‘차르르 차르르.....’

  낡은 자전거 한 대가 제 몸무게의 두 배나 되는 아빠를 싣고 새로 조성된 신시가지의 텅 빈 공터 사이로 꼬물거리듯 달린다. 난 자전거 뒷자리에 앉아 아들의 땀내음과 숨소리를 즐기며 밤하늘을 본다.

  어릴 때 저녁을 먹고 나면 아버지는 우리 형제들을 데리고 삼수초등학교 뒷산에 있는 충혼탑으로 산책을 가셨다. 충혼탑 주변 잔디밭에 누워 아버지의 온갖 무용담을 들으며 오늘처럼 밤하늘을 보았었다. 막내였던 나는 늘 아버지등에 업혀 내려오기 일쑤였고, 아버지의 그 넓은 등이 주는 푸근함은 지금도 나의 기억 속에서 안락한 보금자리처럼 자리잡고 있다.

  오늘은 오랜만에 신경외과 과원들이 모여 식사를 했다. 식사 후에 함께 수련을 받았던 수영이와 맥주 한잔을 더하기 위해 우리집 근처 노천카페에 들렸다. 집까지는 약 1Km 조금 더되는 거리라서 택시 타기에는 너무 가깝고, 취기가 적당히 올라서인지 걸어가기에도 엄두가 나질 않아 아내에게 차로 데리러 오라고 전화를 했다. 아내는 요즘 술자리가 잦은 내게 화도 났겠지만 “운동삼아 걸어와!” 하며 소리쳤다.

  수영이는 낄낄거리며 “형수에게 혼났구나.” . 우리는 몇 잔 더 마시고 일어서려는데 수영이가 길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형! 저거 용민이 아닌가?” 그래 맞았다. 용민이였다. 제 또래들보다 조금 크기는 해도 이제 초등학교 5학년이다. 길옆 자가용들 틈에 제 자가용(자전거)을 주차시키고 열심히 열쇠를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는 너무나도 당당한 모습으로 카페에 들어서서는 “아빠! 걱정하지 마세요. 내가 데리러 왔으니까요.”

  어릴 적 결핵을 앓았던 나는 늘 건강에 대해 일종의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다. 결혼을 하여 나처럼 몸이 약한 아이를 낳으면 어떡하나 하는 염려도 했었다. 그래서 결혼을 해서도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아이낳는 일에 무심했었고, 손이 귀한 집에 딸을 시집 보내놓은 장모님은 노심초사였다. 3년의 공중보건의 근무동안 아이가 없었다. 공중 보건의 근무가 끝나고, 용민이가 엄마 뱃속에 생기던 해 나는 인턴 수련을 하고 있었다. 이어서 4년의 신경외과 수련과정은 혹독했다. 어쩌다 집에 오면 용민이는 아빠를 보고 낯을 가렸다. 오히려 이모부가 오면 “아빠”하고 달려가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이종사촌들이 아빠라고 부르니까 저도 아빠였던 것이다. 동서는 용민이가 아빠라고 부르는 것을 굳이 막지 않으며 좋아했고 진짜 아빠처럼 귀여워했다.

  전문의를 취득하고 전임강사 발령이 늦어졌다. 해남에 있는 종합병원에 임시로 몇 달 몸담고 있으면서 용민이와 나는 처음으로 함께하는 시간을 많이 보냈다. 처음에는 아빠와 함께 있는 저녁 시간을 어색해하였고, 난 온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녀석의 말썽에 익숙하지 않았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해남읍 근처에 있는 조그만 저수지로 낚시를 데리고 다녔다. 지루해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아주 흥미로워했다. 새벽에도 낚시가자면 눈 한번 부비지 않고 일어났다. 그리고는 한칸 반짜리 작은 낚시대로 월척도 올렸다. 월척을 올리던 날 녀석의 허풍은 날 능가한다.

  “아빠! 물속으로 끌려 들어갈 뻔 했어요.”

  용민이에게 잡힌 그 떡붕어는 몇 달간 우리집 냉동실에 머물러 있어야 했다. 집에 오는 사람마다 의무적으로 용민이 손에 들려나온 붕어를 감상해야 했고, 칭찬을 아끼지 않아야만 했다.

  녀석의 유머 감각은 탁월하다. 어느 날 집에 전화를 했는데 용민이가 받았다.

“-세요. 용민인데요. 누구세요?” (항상 용민이는 전화기를 집어들면서 ‘여보세요’를 하기 때문에 실제 통화하는 사람에게는 ‘-세요’만 들린다)

“아빠다. 우리 용민이 지금 뭐하나요?”

“전화받고 있잖아요.”

“그럼 전화받기 전에는 뭐했나요?”

“전화 받을려고 달려 왔죠.”

 

  유치원을 다니던 용민이가 어느 날 집에 와서 조그만 쪽지를 꺼내들었다. 쪽지 속에는 꼬불거리는 글씨체로 ‘용민아! 어제 자전거를 태워줘서 고마웠어. 네가 그렇게 개구리를 잘 잡는 줄 몰랐어. -주혜은-’ 용민이가 개구리를 그렇게 멋있게 잡는줄은 나도 몰랐었다. 다음날 이 편지는 아빠의 병원 사람들 모두가 알게 되었다. 아빠는 입이 가벼워서 말하지 않겠다는 용민이와의 약속을 지킬 수 없었던 게다.

  용민이가 아빠와 다른 점은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잘 보지 않는다는 거다. 서울에 오랜만에 올라가 복잡한 지하철 안이었다. 녀석의 목소리는 항상 크다.

“아빠! 이 기차가 정말 땅속으로 가고 있어요?”

“응!(아주 작은 목소리로)”

“아빠! 신기하지요. 아빠! 우리 이런 기차 처음 타보지요?”

주변 사람들이 모두 쳐다보는 가운데 아빠와 엄마는 상황 수습을 할 수 없었다.

  레지던트 때 타던 작은 프라이드 승용차를 스포티지로 바꿨을 때였다. 차를 주차하고 내려서는 아빠에게 마중나온 용민이가 한마디 한다.

“아빠! 아빠차가 커졌어요. 밥을 많이 먹어서 그러나 봐요.”

초등학교 일학년이 된 용민이가 어느날 600점을 맞아왔다. 두 과목을 보았는데, 하나는 60점 하나는 0점을 받은 거였다. 녀석은 집에 오는 길에 이 상황을 엄마에게 어떻게 설명해야할 지 무척 고민스러웠던 모양이다. 두 시험지를 동시에 두 장을 들고 보는 순간 마침내 해결된 것이다. 100점보다 더 한 600점이 되었으니까.

  어느 해 크리스마스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용민이와 동생 용진이는 호들갑을 떤다.

  “용진아! 산타 할아버지가 진짜로 다녀가셨나 봐”

  엄마와 아빠는 흐믓한 미소를 지으며 방에 있는데, 선물을 뜯어내며 신이 난 녀석이 동생에게 작은 소리로 하는 말이 아빠귀에 들리고 말았다.

  “용진아! 실은 이거 엄마하고 아빠가 사다 놓은 거야”

 

  용민이는 이 세상에 태어나 준 것만으로도 나에게 많은 것을 주었다. 훗날 용민이의 어떤 실수도 어떤 시행착오도 모두 용서할 생각이다. 그리고 무슨 일이 생겨도 절대 미워하지 않을 생각이다. 나에게 못난 부분이 많은 만큼 용민이에게도 못난 부분이 있을 것이고, 나도 실수하듯이 용민이도 실수할 수 있다. 나에게 단점과 결함이 있다고 내 자신을 미워하지 않듯이 용민이에게 단점과 결함이 있다고 용민이를 미워하지 않는다. 내 자신을 사랑하는 것 이상으로 용민이를 사랑한다. 그리고 용민이는 이미 나의 모든 생을 보상하고도 남을 만큼 나에게 삶의 용기와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를 알려 주었다.

  처음으로 자전거 뒤에 아빠를 싣고 신나게 달리고 있는 용민이에게

  “용민아! 아까 수영이 삼촌에게 받은 만원, 엄마에게 말 안할게”

  “고마와요. 아빠!”

  우리는 낄낄거리며 밤하늘을 보았다. 그리고 그 옛날 내 아버지의 등만큼이나 세상에서 가장 넓은 등을 보았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아빠의 오지랍-------두번째 [3] 정성헌 2013.05.25 18493
37 라오스에서 온 편지 - 뜨거워진 여름만큼이나 뜨거웠던 순간들... [1] file 관리자 2013.06.07 7157
36 미얀마 기증물품 [1] file 도깨비 2013.05.14 7431
35 지오학교 해외자원 활동 참가 [2] 도깨비 2013.04.20 7858
34 미얀마를 사랑했던 한 선교사님 편지 ! [5] file 그린매니아 2013.04.13 8084
33 엄마, 엄마 꿈은 뭐예요? [5] 이레 2013.04.10 7433
32 아빠의 오지랍 -아들편지- (정성헌 이사장) [1] 관리자 2013.04.04 7128
31 작은 베품의 미덕을 느낍니다... [5] file 해오름 2013.03.13 7016
30 맹꽁이 합창단 (안훈) [1] file cattrap 2012.12.21 8485
29 히말라야에서 만난 파란 눈의 전라도 할머니 (정성헌) file cattrap 2012.12.21 7544
28 2009년도 필리핀 마갈랑 진료여행기 (정성헌) file cattrap 2012.12.21 6743
27 2010년 필리핀 마갈랑 진료여행 준비 (최하영) [1] file cattrap 2012.12.16 7336
26 2009년 필리핀 마갈랑 진료여행 (최하영) [1] file cattrap 2012.12.16 8012
25 아프카니스탄에서 온 소식 file cattrap 2012.12.16 6469
24 아버지와 13켤레의 구두 [1] file cattrap 2012.12.16 7462
23 꿈꾸다 돌아온 현실 file cattrap 2012.12.16 6387
» 세상에서 가장 넓은 등짝 [1] file cattrap 2012.12.16 7458
21 뿌리깊은 나무 [1] file cattrap 2012.12.04 8066
20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편지(송양환) file cattrap 2012.12.04 7417
19 울지마 톤즈 그리고 이태석 신부님 [1] file cattrap 2012.12.04 7889

사단법인 선한영향력

광주광역시 서구 무진대로 975(광천동) 선한병원 9층

연락처

Tel : 062-466-2360 / Fax : 062-466-1129
담당자 : 김지은 간사

사단법인 선한영향력은 소외된 지구촌 약자들과 의료·환경·교육의 혜택을 나누기 위해 설립된 비영리 자원 봉사 단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