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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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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따뜻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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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만하지 말자내 일생의 좌우명이다. 치과의사로서 환자와 직원들에게 권위적으로 보여야 하는 내가 타인을 대하는 데 있어 가장 조심하는 게 교만해 보이는 거다.

 오늘도 학생들과, 다른 선생님들을 대하는 내 모습에서 교만한 자의 오만함을 스스로 자각 하며 봉사기간동안 다른 선생님들과 잘 지낼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진료적인 일은 어차피 직업의 연속선상이므로 걱정되지 않는다. 늘 하던 대로 하면 되기 때문이다. 급할 것도 없다. 노동이 가미되는 치과진료 특성상 내가 하루에 볼 수 있는 환자는 정해져 있다. 그런데 타인과의 관계는 늘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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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은 내가 알고 있는 모든 동료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해외봉사를 계획하는데 있어서 가장 믿을만한 사람은 그래도 선경험이 있는 동료들이다. 유닛 체어를 수배하였더니 여러 샘들이 조언을 해주셨고, 또 보다 많은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선배들을 알선해 주셨다. 연락은 내일부터 차례로 하기로 하였다. 환자 특성이나 지역 특성등 현지 사정을 전혀 모르는 입장에서 참 막막하다.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괜히 나섰다는 후회감이 물밀듯이 다가온다.

 

이럴 때는 작업을 단순화시키는 것이 최선이다. 우선 진료할 수 있는 것보다는 진료할 것과 진료하지 말아야 할 것을 정했다. 진료에는 항상 위험이 따른다. 0.1%로 발생하는 부작용이라도 당하는 환자는 100%이다. 게다가 나는 그곳에 남아있지 않으니 탈 날 행위는 애초에 하지않는 게 좋을 것 같다. 이렇게 마음을 먹고 나니 진료영역은 충전치료만 하기로 하였다. 진료영역이 정해지고 나니 기구 준비는 일사천리로 된다. 가져갈 기구 목록들을 동선별로 작성하였다. 준비 끝... 이제 출발 전에 짐만 싸면 된다.

 

6.1

 

그동안 미루었던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선배들은 하나같이 말린다. 혼자 어떻게 그 많은 기구를 들고 가려고 하느냐고! 그것도 우기에

뒤로 후퇴할 수 없을 때는 전진만이 살길이므로, 나는 선배들에게 가서 하늘 보는 일만 없게 해달라고 조언을 구했다. 생초보자가 준비해야 할 것들을 아주 기본적인 것부터 알려주시라고 매달리는 수밖에는 없다. 선배들은 한숨을 내쉬며, 퇴근시간 후 다시 전화하라 하셨다. 그날 저녁 나는 해외 봉사 팀이 꾸려야 할 모든 것들을 섭렵하게 되었다. 걱정들을 뒤로 하고 할 만하겠구나 하는 자신감도 들었다.

 

6.2

 

선배들의 조언에 따라 출발 전부터 진료 때까지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상황들을 시나리오화 했다. 시나리오 동선을 따라가니 미얀마에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눈에 보였고, 눈에 보인 이상 준비는 너무도 간단하였다. 진료적인 것뿐만 아니라 눈떠서부터 잠 잘 때까지의 모든 것들을 시나리오화 했다.

 

6.4

 

생각보다 많은 것들(기구, 재료, 인적자원)을 나 개인이 가지고 있었다. 부족한 재료를 구입하고, 헤드라이트를 구하려 하는데 구원자가 나섰다. 선배가 너 이거 필요하지?”하며 부탁하지도 않은 내게 완벽한 헤드라이트를 가지고 병원에 찾아오신 거다. 정말 구세주처럼 보였다.

 

7.10

 

문방구 사장님이 아이들 가져다 주라시며 문구들을 가져 오셨다. 정말 우리 동네는 좁다. 내가 봉사 가는 것이 벌써 동네한바퀴 돌았나 보다. 감사하게 받았는데... 짐이 늘어난 관계로 캐리어를 다시 사야했다. 고민하던 내게 한번 갈 거 아니지 않느냐면서, 남편이 그냥 사란다. 사실 매년 간다고 말 못하던 난데 미리 그 마음을 알아채고 먼저 말해준다. 그러면서 해외여행 갈 때마다 고생하는 나를 걱정하며, 손수 여러 가지들을 챙겨준다. 그런 남편이 너무 든든하고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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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식구가 나란히 앉아 각자의 짐을 챙겼다. 아들 딸도 내일부터 캠프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침낭은 두 개인데, 세 사람 모두 가져가야 할 준비물이다. 아들 녀석이 양보한다. 저는 야외 경험이 많아서 없어도 된다나! 그러면서 자기 우의까지 빌려주면서 입는 법과 개는 법을 알려준다. 그러면서 주의 말씀도 잊지 않는다. ‘파 손 주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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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를 좀 일찍 마무리했다. 기구가 많지 않은 관계로 사실상 병원 기구를 통째로 가져가야 했다. 기구 목록에 따라 다시 패킹을 했다. 기구파손이 제일 걱정되므로 여러 번 패킹하고, 또 던져도 움직이지 않게 잘 포장하여 boxing하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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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난히 출발하였다. 사원 게스트 하우스라서 많이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시설이 좋았다. 한 가지 걱정은 야식을 하지 못한다는 것... 현지 식사를 잘 못하는 나는 그게 제일 걱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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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역 없이 진료하는 것이 생각보다 힘들다. 꼭 통역이 필요하다. 얼마 전만 하여도 해외 여행시 통역이 없이 그럭저럭 하였고, 오기 전에 2주간 하루에 2시간 이상씩 영어를 들으면서 생활하였는데 영어조차도 구사가 잘 안 된다. 이런 ...

현지어도 자꾸 생각이 나지 않는다. 금방 보았고, 들었는데 생각나지 않고 발음이 안 된다.

할 수 없다. 온유에게 기본적인 필요한 말을 배워오게 하였다.

역시...공부하는 애들이라 다르다. 금새 적응한다. 그런 아이들이 부럽지만 말이 통하지 않으니, 최대한 설명안 할 치료만 해야겠다. 특히나 치과를 처음 접한 이들이 받을 충격도 고려해야 했다. 모든 환자들에게 한국에서 5~6살 아이들에게 치료하듯이 했다. 첫 환자가 왔을 때 병원 실장이 메스를 챙겨주면서 하던 말이 생각났다.

 

안가지고 가시면 꼭 쓸 일이 생기던데. . . 몇 개만이라도 가져가시죠!!”

그 말이 현실이 될 줄이야.!

 

진료하는 술자의 입장에서는 정말 불만족스러운 진료였다. 화장실가서 뒷마무리 안하고 나온 느낌이랄까? 그러나 입장 바꿔서 환자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

5세 아이가 치과에 처음 와서 자기 입안에 기구로 소리를 내면서 왔다 갔다 하는데 어떤 생각을 할까? 그리고 하고 나니 아프다고 느낀다면?

아마 아이는 치료한 것을 후회하며 다시는 치과를 가지 않을 것이다. 얼마 전 막내(5)가 치료하니 처음에는 멋모르고 하더니 조금 아프고 나니 다시는 치과를 오지 않으려 하던 것이 생각났다. 치과를 모르던 사람 입장에서는 당분간 까맣던 자기 치아가 하얀 무언가로 채워진 것이 아픈 것보다 더 기분 좋은 일 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학창시절 최상의 진료란 술자입장에서 최선의 진료방법을 환자도 수긍하고 받아들이면 더 이상 바랄게 없으나, 경우에 따라서는 진료 받는 환자 입장에서 최선은 아닐 수도 있으며, 환자입장에서 최선을 선택하는 게 소통의 한방법이 되기도 한다.”는 어느 교수님이 말씀이 생각난다.

 

송 상기 교수님과 송 양환 원장님께서 미얀마의 시대상이 우리나라 60~70년대 상이라는 말씀을 듣지만, 그 시대를 살아본 적이 없는 나는 피부로 느껴지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70년대에 유년기를 보냈지만, 난 부모님을 잘 만난 덕에 나름 부족한 것 없이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냈기에 두 분의 말씀이 무슨 말인지 정말 모르겠다. 나도 이럴진댄 학생들은 어떤 생각이 들까? 과연 생각을 하기는 할까?

 

마무리 소감발표에서 미얀마가 그 당시 우리나라를 원조하였다는 사실이 너무도 놀라웠다.

그 후로 불과 30~40년밖에 흐르지 않은 세월 속에서 두 나라에는 무슨 일들이 일어났던 걸까? 두 나라의 격차는 무엇으로 설명해야 하나미얀마 사람이 한국 사람보다 더 멍청하거나, 게으르거나 인구수가 더 적거나 하진 않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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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간 결핵병원의 준비된 모습이 놀라웠다. 병원과 보건소의 차이는 바로 이 것이구나 하는 것을 실감나게 하였다. 어제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스카웃된 동현이와 워크 샵에서 본 것과 너무도 다른 온유는 정말 좌청룡, 우백호였다.

워크샵에서 영어단어장 가져가도 되냐고 묻던 온유가 내 학창시절을 떠오르게 하였다. 아침에 눈떠서 잠들 때까지 공부 외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학창시절, 다른 것을 생각하는 것 그 것만으로도 내 본분을 못한다는 자책감이 들 정도로 나 또한 날 다그쳤다. 그 당시 읽었던 루이제 린저의 소설들은 나를 더욱 극한으로 내몰았다.

 

반면 지난 워크 샵에서 동현이는 너무도 말이 없었다. 질문에도 네, . . 만 말하던 아이가 자기 소개에서 본인이 말하는 것보다는 타인의 말 듣는 거를 더 잘한다 하였다.

준용, 수윤, 석인, 영우, 소현이. 모두에게 한마디씩 조언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렸다. 그러나 현지에서 이 모든 것들이 나의 오지랖이라는 것을 알았다. 너무도 부족해 보이던 아이들이었는데 사실은 그들을 믿지 못하던 내가 더 부족했다는 걸 현지에서 절실히 느꼈다. 경험하지 못하고 좁은 세상에서 살아온 아이들에게 내가 살아온 경험과 내 기준에서 그들을 판단하고 재단하고 있었던 나의 오만과 교만을 깨달았다.

온유와 동현이는 나의 완벽한 조력자였고, 그들과 현지통역자 때문에 진료는 술자와 환자가 모두 동의한 최선의 진료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덴탈 I.Q가 어느 정도는 있었던 환자들인지라 더더욱 편했다. 저녁이 되서야 다른 팀원들 눈에 내가 많이 힘들어 보였고 내 몸 또한 탈진하였다는 것을 인지하였지만 어제와 함께 나는 치과의사로서 매순간에 최선의 선택을 하였고, 이를 봉사로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기에 다른 팀원들이 위로와 격려가 사실 조금 부담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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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처음 현지인들을 마음으로 보았다. 어제까지는 그냥 환자들이었다. 환자와 치과의사로 만나는 것과 사람과 사람으로 만나는 것은 너무도 다르다. 아이들의 맑은 눈과 천진한 웃음, 그리고 신기해하는 동네 어른들과, 조그만 몸에 남산만한 배를 한 임산부의 모습까지. 갖가지 군상들이 내게로 왔다. 그들을 보면서 어제의 피곤함이 오늘에서야 밀려왔다.

각자의 파트에서 열심인 다른 팀원들의 모습을 보면서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내게 웃음과 신기함을 보이는 군상들을 보면서 그들과 이야기하고 싶고 소통하고 싶은 욕망에 입이 근질거렸다. 그들을 보면서 나는 벌써 내년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생각은 생각만 낳을 뿐, 남는 것은 두통뿐이다.

 

나는 일단 시작 후에 다시 생각합시다.“라는 말을 제일 싫어한다. ‘시행착오야 말로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일단 시작을 해야만 되는 일도 있나 보다. 무턱대고 저지른 무모한 일이 이렇게 무사히 끝나가고 있지 않는가?

 

87

 

팀장님의 숙제가 나왔다. 이런 오지랖 ! 학생들 만의 숙제인데 또 나섰다. 이번 일을 계기로 난 참 잘살아왔고, 세상은 잘 돌아갈 거란 믿음이 생겼다. 준비 기간 중 보여준 여러 동료들의 도움은 내가 이번 프로젝트를 문제없이 마무리할 수 있게 해준 공로자들이다.

 

전혀 안면식도 없는 사람이 조언을 구하자 아낌없이 본인이 가진 모든 노하우와 엑기스를 전수해준 선배들과, 그런 선배들을 연결해준 동료들을 가진 나는 풍부한 인적 네트워크를 가진 게 아닌가? 결국 난 그들에게는 최소한 넌 괜찮은 녀석이다는 스티커를 발부받은 셈이다.

 

사전교육에 좀 더 시간을 할애해야 할 성 싶다. 이번 사전교육에서 부족한 점은 소양교육 이었던 것 같다. 마지막 날 송상기 교수님께서도 언급하셨듯이 봉사자 전원이 현지인들과 현지 사정(약간의 현지 역사)에 대한 소양 교육을 하였다면 나의 내면에 깔려 있던 내가 베풀러간다는 무의식을 조금은 바꾸고 갈수 있었을 것이고, 이런 의식변화가 선제되어야만 베푸는 자원 봉사가 아닌, 나누는 자원 활동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아직 사회 경험이 없는 학생들에게는 처음 뿌려지는 씨앗 중 우량 씨앗으로 뿌려지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기술적인 것들은 너무도 사전교육이 잘 되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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